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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89 전투기 역사와 현재상황

OptimusJB 2020. 3. 15. 20:38
제2차 대전을 치르며 미국은 중폭격기를 무서운 무기로 승화시킨 나라다. 특히 전쟁 말기에 등장한 핵폭탄은 중폭격기의 위상을 한층 높여주었다. 앞으로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밀고 당길 필요 없이 적의 요충지로 날아가 핵폭탄을 던지면 모든 것이 끝나는 시대가 된 것이었다. 정작 너무 강력하다 보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아직 실전에서 사용한 적이 없지만 전쟁의 방법이 이처럼 크게 바뀌었다. 미국은 당연히 이런 우위를 혼자 누리고 싶어 했으나 냉전이 시작되면서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른 소련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때문에 양국은 강력한 창을 보유하기 위해 애썼지만 상대의 창을 막기 위한 방패도 준비해야 했다. 지금이야 핵폭탄을 운반하는 수단도 다양하고 이를 요격하는 시스템도 다층적으로 구축되어 있지만 1960년대 이전에는 폭격기가 유일한 창이었고 전투기가 가장 효과적인 방패였다. 문제는 전투기나 대공포로 폭격기를 차단하는데 실패하면 어쩔 수 없이 일부 피해를 감수했던 이전과 달리 핵폭탄은 파괴력이 워낙 커서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제2차 대전 종전과 더불어 보다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제트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요격기가 필요했다. 미국의 F-89 스콜피온(Scorpion)은 이런 시대 상을 배경으로 탄생한 제1세대 전투기 시대의 요격기다. 개발은 제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8월 28일, 미 육군 항공대가 기존에 본토 방어에 투입한 P-61의 대체를 위한 사업 공고를 항공기 제작 업체들에 내면서 시작되었다. 거대한 미국 본토를 작전 구역으로 삼아야 하기에 신속히 고고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어야 하고 항속 거리도 길어야 했다. 더불어 전천후 비행 능력과 일격에 폭격기를 격파할 수 있을 만큼 일발 필살의 공격력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고성능 레이더, 사격통제 장치, 강력한 무장이 탑재되어야 했으므로 구조적으로 기체의 크기가 클 수밖에 없었다. 대신 공대공전투 같은 임무는 배제되어 기동력 같은 부분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철저히 본토 방공에만 특화된 요구 조건이었다. 지금은 고성능의 다목적 전투기들이 이런 임무도 수행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했던 당시는 임무마다 특화된 별도의 작전기가 요구되던 시대였다. 총 6개 업체가 경쟁에 참여했는데 1946년 3월, 커티스-라이트가 제출한 CW-29(XF-87)와 노스럽의 N-24(XF-89)가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다. 둘 다 야간 전투용 레이더를 기수에 탑재했는데 XF-87은 엔진을 주익 중간에, XF-89는 동체 하부 측면에 장착한 방식이었다. 심사 끝에 기체 설계 구조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XF-89가 승자로 선정되어 F-89라는 제식 부호를 부여받고 본격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엔진, 기체 구조 등에서 기술력이 부족한 제트 시대 초기다 보니 군이 F-89에 충분히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F-80을 기반으로 하는 F-94의 개발을 별도로 진행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소련의 전략폭격기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F-89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48년 초도 비행에 성공하고 1950년 9월부터 배치가 시작되면서 미국 최초의 전천후 제트요격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초기형에 탑재한 20mm 기관포도 당시로써는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양산형에 와서는 FFAR 로켓 등으로 무장을 바꾸었다. 그러나 로켓도 무유도여서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해 이후 공대공미사일(GAR-1)을 최초로 탑재했고 이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빗맞아도 확실하게 폭격기를 차단할 수 있는 핵 로켓(AIR-2)을 역시 최초로 운용했다. 미국만 운용하고 실전이 없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처럼 F-89는 최초의 타이틀이 많았던 전투기다. 이미 후퇴익의 F-86이 실전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으로 알 수 있듯이 F-89는 제트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인상적인 전투기가 아니었다. 고속으로 목표까지 치고 올라가야 하지만 속도나 상승력도 평범한 수준이었다. 직선익 주익처럼 제2차 대전 당시에 활약한 프로펠러 전투기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군이 F-94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었을 만큼 성능에 만족하지 않았다. 다만 스펙 상으로 폭격기 저지 능력만큼은 대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후기형처럼 로켓으로만 무장한 방식은 F-89가 최초는 아니었지만 상당히 강력한 무장이었다. 주익 외측에 고정된 보조 연료탱크를 개조한 포드에 각각 52발의 2.75인치 구경 FFAR(이른바 마이티마우스) 로켓을 탑재했고 이와 더불어 주익에 5인치 구경의 HVAR, 공대공미사일, 핵 로켓 등을 추가 장착할 수 있었다.과잉 무장 같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기에 어느 정도 효용성이 있는지는 미지수지만 어떻게든 핵폭탄 투하 전에 적의 폭격기를 막아야만 한다는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오늘날도 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값비싼 THAAD, 패트리어트, SM-3 같은 다양한 방어 수단을 동시에 운용 중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방어에 관해서 만큼은 과한 것이 부족한 것보다 낫다.F-89는 1949년 실험용으로 제작된 2대의 XF-89를 포함해 1956년까지 총 1,052대가 생산되었다. 전량 미 공군과 주방위군이 사용했는데 1969년 모두 도태되었으므로 탄생 시기가 비슷한 여타 전투기들과 비교하면 약간 장수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공대공전투에 투입할 수 없었지만 애초 개발 목표대로 폭격기 저지용으로 사용하는 데 그럭저럭 무난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후속기인 F-102가 베트남전쟁에 투입되어 활약한 것과 달리 F-89는 실전 경험이 없다. 그것은 폭격기 요격 이외의 임무에 투입하기 어려울 만큼 여타 공대공 전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와 같다. 운용 중 특이 사항으로는 1956년 8월 16일, 캘리포니아 팜데일 인근 상공에서 훈련 중 무인표적기를 향해 발사한 로켓탄이 빗나가 인근 민가에 떨어지면서 사고가 발생한 사례가 있다.1957년 7월 19일, 네바다 핵 실험장에서 1.7kT급 탄두를 탑재한 AIR-2 공대공 핵 로켓을 발사하는 실험을 했다. 4,600m 상공에서 폭발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유일하게 실제로 사용된 핵 로켓이다. 지금 시각으로는 적의 폭격기를 막기 위해서 핵폭탄을 자기 머리 위에다 터뜨리는 것이 이해가 가기 어렵지만 그만큼 소련의 폭격기 전력이 두려운 존재였고 당시에 이보다 확실한 방공 수단이 없었다.